글_윤현지 사진_윤현지, 이지오
남구 문현동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 빨간 불길이 타올랐다. 불이 발생한 지 4분 만에 건물 내부의 온도는 급격하게 치솟았다. 창문 사이로는 끊임없이 검은 유독성 연기가 흘러나왔다. 현장에 있던 소방대원들은 신속히 불길을 잡는 대신, 몇분 뒤 “실험 종료”라는 말이 들려오면 그제야 주택 내부에 물을 뿌려 화재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해당 화재는 실제 현장이 아닌, 2024년 1월 18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서 실행한 ‘아파트 화재 대피방법 관련 화재재현 실험’ 현장의 모습이다.
현장에 직접 참여해 지휘한 부산소방재난본부 제용기 화재조사계장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어볼 수 있었다.

실험의 계기
화재 사고의 경우 대부분이 불을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아파트 화재 발생 시 사망자의 70%가 연기로 인한 사망자입니다.
화재 조사 업무를 하다 보면 현장에서 이와 관련된 안타까운 사망사고를 정말 많이 접하게 됩니다. 예전 수영구 망미동 빌라 4층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6층에 거주하시던 분들 중 두 분은 문을 열고 대피하다 사고를 당하셨는데, 다른 집에서는 실내에 대기하면서 구조를 기다리시다 큰 문제 없이 구조되셨습니다.
최근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요, 화재를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리시거나, 계단을 통해 대피하다 사망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이러한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니 작년 10월부터 아파트화재 피난안전대책을 개정해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정된 피난 매뉴얼이 실제 어떤 내용인지, 화재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유독가스로부터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지를 그냥 글보다는 영상으로 보여드리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 같다는 생각에 이번 실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실험을 준비하며
실험을 결정했지만 실행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장소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건축물에 직접 불을 지르는 실험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 적절한 실험이 가능한 장소여야 했다.
부산뿐만 아니라 경남과 울산지역까지 수소문한 결과 문형동의 한 재개발 단지를 발견했고, 관계자에게 협조를 구해 4층 빌라 건물 2개 동을 3일간 빌릴 수 있었다.
첫째 날에는 일반 가정집과 유사한 가구 등을 현장에 배치했고, 둘째 날에는 본 실험에 들어가기 전 예비 실험을 진행했다. 문제는 셋째 날이었다. 주요 언론사들이 모인 가운데 본 실험을 진행하려 하는데, 전날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흐리더니 결국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
화재 현장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다행히 다수의 현장 경험이 있던 제용기 화재조사계장의 지휘 아래 실험은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제용기 화재조사계장은 유용한 결과뿐만 아니라 심한 감기까지 함께 얻게 되었다고.
실험을 통해
처음 실험은 두 가지 상황에서 각각 불을 내어 그 차이를 비교해 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세대는 현관문과 창문을 닫은 채 불을 냈고, 다른 세대는 현관문과 창문을 모두 연 채 불을 냈다.
실험 결과 화재가 발생한 집의 출입문이 열려 있을 경우 화염과 연기가 복도로 분출되어 계단으로 급격하게 연기가 유입되었다. 반면 출입문을 닫았을 때는 연기가 거의 분출되지 않아, 특히 윗세대 거실의 경우 확인을 해보니 깨끗한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거실에 가연물을 태우고, 3개의 방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막아보았다. 한 곳은 그대로 두고, 한 곳은 젖은 수건으로 아래를 막고, 다른 한 곳은 방열테이프를 이용해 문틈 전체를 막았다. 실험 결과 방열테이프로 틈을 막는 것이 유독가스를 막는 데 가장 큰 효과가 있었고, 젖은 수건으로 아래를 막을 경우 상단과 옆의 틈으로 연기가 침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실험에서는 유독가스 대처 시 마른수건과 젖은수건, 시중에 판매되는 유독가스 차단 손수건의 성능을 비교했다. 마른 수건으로 연기를 차단할 경우 불을 낸지 1분 50초 만에 가스측정기가 반응해 5분 만에 일산화탄소의 농도가 기준치 이상으로 치솟았다. 젖은 수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가 차올랐지만 마른 수건에 비하면 1/10 정도의 연기로 뛰어난 성능을 보였으며, 유독가스 차단 손수건은 5분 이상의 시간 동안 일산화탄소에 반응하지 않아 뛰어난 차단 효과를 보였다.

구성품 : 방열테이프, 테이프커터, 화재대피 손수건, 화재대피키트 사용법
위험한 만큼 훌륭한 성과를 보인 실험을 진행했음에도, 제용기 화재조사계장은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완벽한 피난 방법, 진압 방법이라는 게 나오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실험들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실험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안타까운 사고를 한 건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평소에 꼭 한번쯤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변경된 피난 매뉴얼에 대해 숙지해 주시고, 막을 수 있는 사고는 꼭 막을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대원분들 역시 소방대원으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건강과 안전에 유의하는 것입니다. 항상 이 점을 꼭 마음에 새기며 활동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이 기사는 부산소방 이야기 11호 20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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