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서울국제도서전,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풀어내기


지난 6월 26일부터 5일간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개최되었습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주제전시인 ‘후이늠(Houyhnhnm)’*에 대한 큐레이션 도서 400권부터, <2024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전시, 순정 만화로 잘 알려진 인기 작가 모리 카오루의 『신부 이야기』 특별 전시까지 아주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시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종이를 다루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로서, 책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또는 디자인을 통해 책의 주제를 풀어내는 의미 전달 방식에 대한 견문을 넓히기 위해 소나기크리에이티브도 도서전에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2024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전시와 다양한 출판사 부스에서 전시 중인 책들에 포커스를 맞추어 살펴보며 크고 작은 디자인적 영감을 얻게 되었고, 이에 대한 소나기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분들의 관람 후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주제전시 ’후이늠(Houyhnhnm)’ : ‘후이늠(Houyhnhnm)’은 걸리버가 네 번째 여행지에서 만난 나라(‘말(馬)’의 나라)로, 완벽한 이성을 가지고 있어 무지, 오만, 욕망, 비참, 전쟁이나 다툼 등이 발붙일 자리를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완벽해 보이는 ‘후이늠’에도 “인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제한된 이해나 오만함” 등이 존재해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과연 ‘후이늠’이 이상적인 존재이자 우리가 꿈꾸는 세계가 맞는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주제전시는 ‘후이늠’의 세계가 해법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그려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후이늠’을 키워드로 큐레이션된 400권의 도서를 통해 후이늠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세상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사유하며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출처 :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
📚글보다 먼저 다가오는 디자인의 언어

서울국제도서전 전시 홀에 들어서면 주빈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타이완, 프랑스, 태국 등 해외도서 부스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화려한 금박 후가공의 표지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사우디아라비아부터, 그림책과 만화책을 주로 구성한 프랑스 부스까지 나라마다의 특징과 개성을 볼 수 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프랑스국제출판사무국 부스에서 눈에 띄었던 책인데요, 동적인 레이아웃의 타이포그래피와 이미지 배치는 적절한 여백과 폰트 웨이트 등의 요소로 인해 불규칙 속에서의 규칙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흑백으로 구성된 커버에 반해, 컬러풀한 제본 형태로 디자인 포인트를 한 번 더 주어 고급스러운 역사 서적이면서 뻔하지 않은 느낌을 줍니다.


서울국제도서전 다음 부스는 출판사 ‘열린책들’ 부스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열린책들’ 부스는 책의 목적에 명확히 들어맞는 기획이 담긴 도서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부스 외관을 바라보게 배치되어 있던 책장에는 별색과 그라데이션 등 화려하게 디자인된 도서들이 디피되어 있었는데요. 과연 별색의 효과란 이런 것인지, 시선을 확 끌어들이기엔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함께 부스를 구경한 디자이너 Y님의 의견도 곁들여 보겠습니다.
디자이너 Y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건 『개와 고양이 의학사전』 이었는데,
패브릭 재질의 커버에 비비드한 블루의 굵은 라인 라인일러스트를
음각으로 찍듯이 표현한게 마음에 들었어요. 재질을 잘 활용한 느낌이랄까요?
디자이너 D(글쓴이 본인🙋♀️)
오, 맞아요. ‘의학사전’이니 정적인 정보성 내용이 담겨있고
딱딱하고 두꺼운 양장제본으로 제작 해야하는 건 피할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살짝 플러피(fluffy)한?ㅎㅎ 커버 재질을 사용해서 ‘개와 고양이’의 포근함과 부드러움을
떠오르게 해준 것 같아요. 적절한 완화점을 재질에서 찾은 느낌!
디자이너 Y
『편집가가 하는 일』 이라는 책도 표지 디자인이 정말 참신해요.
편집가가 실제로 교정교열해줄 때의 원고를 표현한 디자인과 형광펜의 번지는 듯한 느낌을 그대로 표현한 세세한 센스까지.
진짜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들어요.



이 책은 제목을 굳이 읽지 않아도 표지 재질을 보면 ‘환경에 관한 책이네’ 싶은 생각이 들었을 거에요. 여느 환경 관련 책들과 별반 다를게 없나 싶은 생각을 3초 정도 한 후, “우왁!” 하는 요상한 감탄사를 내뱉어 버렸습니다.
책 앞표지 중앙에 들어간 ‘미싱*’ 선을 발견한거죠!
표지에서 미싱 선을 따라 종이를 똑 떼어내면, 굳이 또 나무를 베어 책갈피를 만들어낼 필요 없이 이 종이 조각을 책갈피로 쓸 수 있도록 만든겁니다.
떼어낸 표지 구멍을 통해 불타고 있는 지구 이미지의 속표지가 보이도록 한 디테일은 기획력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 주었습니다. 기후 재앙에 대해 논하는 책의 주제에 정말 딱 부합하는 디자인 기획이지 않나요?
*미싱 : 종이를 쉽게 절취할 수 있도록 원하는 영역을 점선으로 구멍을 뚫어 놓는 인쇄 후가공입니다. 주로 공연이나 행사용 티켓, 쿠폰 등에서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Y
책날개 가장자리 위아래 부분은 왜 이렇게 잘려나가 있는 걸까요?
디자이너 D
아마 책을 오래 읽거나 다루다 보면 가장가리 부분이 헤지고 손상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부러 책 안쪽으로 아예 들어가도록 따로 도무송* 후가공을 한게 아닐까 싶어요.
독자들을 위해 이런 디테일한 부분도 신경을 썼네요.
*도무송 : 종이를 원하는 모양으로 칼선을 내어 잘라내는 인쇄 후가공입니다. 원형, 곡선, 복잡한 패턴까지 원하는대로 오려낼 수 있습니다.



‘열린책들’에서는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도 눈여겨볼만 했는데요, ‘세계문학’이니 만큼 표지에 굳이 요소를 이것저것 넣어서 작품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표현한 듯한 디자인이었습니다. 흑과 백, 심플한 폰트와 텍스트 배치, 작품이 쓰인 원어를 사용한 제목을 하단에 배치한 소소한 센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시리즈는 이처럼 불필요한 것을 걷어냄으로서 얻어낸 간결하지만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Y
여백과 글로만 이루어진 디자인인데 미완성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아요.
그리고 뒷표지의 ISBN* 표기 좀 보세요. 이렇게 화끈한(?) 표기는 또 처음 보네요.
디자이너 D
그러게요! 전체적인 디자인 컨셉에 맞게
ISBN도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 아예 활용해버린 것 같아서 마음에 들어요.
책을 만들 때 이런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저한테도 좀 필요한데.. 항상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죠.
*ISBN : 국제표준도서번호(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 ISBN) 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방법에 의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각종 도서에 부여하는 고유한 식별번호입니다.(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이 엄청나게 아름다운 별색 인쇄 도서들 좀 보세요. 제가 돈을 안 쓸 수가 있겠어요?(자제 못하고 책을 되는대로 집어서 결제하려고 한 저의 소심한 변명입니다.)
이 시리즈는 윤동주, 이육사, 박남수 등 한국인들에게 아주 보편적으로 잘 알려져있는 시인들의 작품인데요. 어쩌면 우리에겐 이미 너무 익숙해져버린 작품들을 트렌디하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구성해서 판매하는 것도 출판사가 생각해낸 하나의 판매전략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우리는 현재 책도 하나의 악세서리로 작용하는 자기 PR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니까요.
디자이너 D
청년 독자층 분들이(저 포함) 이 코너 앞에 굉장히 많이 서성거리시더라구요.
시집이 동나기 전에 저도 재빨리 하나 집어서 구매해 버렸습니다.
하나쯤은 소장해두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요. 아름답잖아요.😉


걸음을 옮긴 곳은 바로 대한민국 대표 제지회사 중 하나인 ‘한솔제지’ 부스였는데요, 실제로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의 티켓, 뱃지, 디렉토리북, 리플렛 지도 등의 인쇄물에 한솔제지사의 종이가 쓰였다고 하네요.
부스는 숲의 나무들을 옮겨놓은 것 처럼 꾸며져 있었습니다. 나무 기둥에는 다양한 컬러로 제작된 노트가 꽂혀 있었습니다.


설치된 기둥에 적힌 문구들이 눈에 띄었는데요, 그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동물들의 이름을 뿌옇게 표현하여 환경 파괴로 인한 멸종 동물들에 대한 인식을 임팩트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한솔제지에서 진행중인 그린경영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시된 책꽂이는 벤치를 자르고 남은 나무 자투리로 만들고, 전시된 책장 오브제는 전시가 끝난 후 재사용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출처 : 한솔제지 인스타그램)


오후 2시에 ‘순환의 숲’ 노트를 나눠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요, 저희도 재빨리 달려가 하나씩 받아봤어요.🏃🏻♀️🏃
한솔제지사에서 제작되는 다양한 재질의 종이로 내지 한 장 한 장이 구성되어 있었고, 내지 중간중간 인쇄시 K값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센스있게 보여주는 귀여운 프린팅도 있었답니다.
표지 디자인 뿐만 아니라 내지 디자인도 살펴보느라 시간을 많이 할애했어요.🙃 내지도 책의 기획 방향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디자인된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 D
출판사 ‘자음과모음’ 부스의 한 소설책은 페이지 번호와 카테고리 제목을 내지 안쪽 여백에
세로로 배치한 독특한 레이아웃을 가졌는데요, ‘글의 흐름이 중요한 소설의 경우
페이지 번호가 크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게
배치를 한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디자이너 Y
오, 그럴수도 있겠네요. 저는 출판사 ‘창비’ 부스에서
각주에 컬러를 넣어서 오히려 눈에 띄게 디자인한 내지도 봤어요.
정보 전달이 목적인 책에는 각주와 같이 꼭 들어가야 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이걸 아예 디자인적으로 포인트를 줘버린게 괜찮은 방법인 것 같더라구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 P)’ 부스에서는 좀 독특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인데요. 출판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인물들이 평소에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제목에서도 바로 알 수 있듯이 ‘책’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책이기 때문에, 일러두기나 판권지 정보를 표지의 디자인 구성 요소로 사용한 아이디어는 이 책의 주제를 아주 잘 표현해준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D
표지와 내지 재질부터 편집자, 기획자, 발행처나 인쇄소 이름까지.
책 하나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되지만 책만 봤을 땐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는 존재들이죠.
보시면 이것들에 부분적으로 형압* 후가공이 들어가 있어요.
형압 효과 하나로 이 ‘존재감’을 나타내준 아이디어가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보일듯 안보일듯, 강조하지 않았지만 강조한듯한 효과로
책을 만들어내는 구성원들을 돋보이게 해준 느낌이에요.
표지 디자인 기획에 맞게 후가공을 정말 잘 쓴 케이스인 것 같아요.
*형압 : 특정 디자인에 압력을 가하여 돌출시키거나 들어가게 하는 후가공입니다. 안쪽으로 들어가게 하는 형압(디보싱)과 바깥쪽으로 볼록하게 나오는 형압(엠보싱) 두 종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