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불가능을 품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심장이 뛰는 열망을 담고 있다.
2024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한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넘어서는 반응과 깊은 울림을 남긴 전시였다. 이름 없는 자수 작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치열한 아름다움은, 단순한 ‘전통 공예’의 복원이나 향수를 넘어선, 근대를 다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자 질문이었다.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국내 자수의 다양한 계보를 전면에 내세운 이 전시는, 단지 근대를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수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의 경이로움과 치열한 감각을 되새기게 하는 귀한 자리였다. 손의 노동으로 축적된 예술적 실천, 보이지 않았던 여성 예술가들의 삶, 그리고 ‘쓸모’ 너머의 아름다움을 향한 시선까지.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1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박혜성 학예연구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다시 자수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계보 밖에 있던 예술가들의 삶, 손의 힘으로 이뤄낸 섬세한 실천, 그리고 ‘한국 사회가 격변의 시절을 거치는 동안, 한국의 자수는 과연 변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자수로의 탐색의 여정. 그 생생한 기록이, 지금 다시 펼쳐진다.
Q. 작년 5월에 시작했던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가 어느덧 1년이 되어가네요.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전시의 인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요. 지금 시점에서 다시 이 자수전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어요?
저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근대미술을 담당하고 있어요. 서울관처럼 현대나 동시대 미술을 다루는 곳은 현재 활동 중인 작가들이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서 확장성이 크죠. 반면 근대미술은 시간적·공간적으로 제약이 많아요. 작가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고, 전쟁과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유실된 작품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래서 더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분야라고 생각해요. 근대는 단절된 시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같은 시간대예요. 우리가 지금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제도나 기술, 생활양식들도 사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외부로부터 도입된 것이 많거든요. 그래서 ‘원래 그런 거였지’ 하고 넘기기보다, 다시 질문해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전통과 근대의 관계는 산업화를 거치며 60~70년대에 한 번 더 재해석됐고, 그만큼 근대는 하나의 층위가 아니라 여러 겹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고 봐요.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그런 시선으로 자수를 통해 근대를 다시 들여다본 전시였어요. 공예와 미술의 경계는 근대기에 형성된 것이고, ‘왜 자수는 미술로 분류되지 않았을까?’, ‘공예와 미술은 어떻게 나뉘었을까?’ 같은 질문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죠. 그래서 저는 이 전시가 자수라는 매체를 통해 근대를 재발견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다시 소개하고 싶어요.
전시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한국 자수의 근현대적 흐름을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조망한다. 1부 ‘백번 단련한 바늘로 수놓고’에서는 전통 자수가 근대 공예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의 자수 유산을 소개하고, 2부 ‘그림 갓흔 자수’에서는 자수가 미술공예로 자리 잡으며 여성 예술가들의 활동이 본격화된 과정을 보여준다. 3부 ‘우주를 수건(繡巾) 삼아’ 는 광복 이후 자수가 추상성과 조형성을 확장해나가는 모습을 담고, 4부 ‘전통미의 현대화’는 전통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자수의 현재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Q.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한데요. 전시 소개 영상에서는 ‘한국 사회가 격변의 시절을 거치는 동안, 한국의 자수는 과연 변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하셨는데요.
자수는 흔히 ‘전통’이라는 말과 함께 따라오는데, 20세기처럼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과연 자수는 아무 변화도 없이 그대로였을까? 그게 출발점이었죠.
저는 자수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자수를 근대미술의 시선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술사나 역사는 보통 승자의 목소리로 쓰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 이면에 있던 작지만 중요한 목소리들은 놓치기 쉽고, 자수도 그중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작은 목소리들을 다시 발굴하는 것이 지금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이 전시가 그런 작업의 하나였으면 했어요. 그리고 그다음 세대가 또 그 이후를 이어가 주길 바라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새로운 시선’을 가지는 일이에요. 근대라는 시간은 단순히 과거의 한 시점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복잡한 시간이에요. 제국주의, 식민주의, 전쟁 같은 큰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 속에서 자수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실험을 해왔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수는 전통적으로 실용성과 장식성을 지닌 공예로 여겨졌지만, 20세기 자수에는 그 이상이 있었어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통 자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계보 바깥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작업하던 흐름들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런 줄기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자수가 단순히 ‘과거의 전통’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되고, 그런 지점이 이번 전시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뤄졌어요.
Q. 전시를 준비하시며 에밀리 디킨슨의 문장,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가 떠올랐다고 하셨죠. 그 지점에서 이번 전시의 시작을 열어주는 ‘자수 연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자수연보는 처음 시도된 작업이다 보니, 오류나 공백이 많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시작해야 다음이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부족하더라도 일단 첫 단추를 꿰는 것이 중요했죠. 이 작업이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시작이 없으면 다음도 없으니까요.
가장 어려웠던 건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었어요. 기준이 명확히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어디까지 포함해야 할지, 어떤 이름부터 넣어야 할지 매 순간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빠진 이름에 대한 아쉬움이나, “왜 이 이름은 없느냐”는 반응도 있었고요. 어떤 경우는 이름은 알려졌지만 증빙 자료가 부족해 결국 포함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번 연보는 완성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출발선에 가까워요. 하나의 시도이자 제안이고, 앞으로 더 많은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의 손을 거치며 계속해서 다듬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는 이 연보가 ‘다음 자수연보’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자수 연보는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처음’을 만든 작업이다. 인터뷰 당시에는 마치 별일 아닌 듯 담담하게 전했지만, 기준을 정하고 이름을 고르는 모든 과정에 보이지 않는 고민과 노력이 켜켜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꿰어낸 자수연보는, 한 사람의 작은 시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이후를 가능하게 만든 귀중한 첫 걸음이자, 이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계보 없는 마법’의 또 다른 증거일지도 모른다.
Q.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이라는 제목에는 근대와 자수, 그리고 숨겨진 함의가 녹아 있는 듯합니다. 이 제목이 탄생하기까지의 고민도 깊으셨을 것 같은데요.
네, 정말 많이 고민했던 제목이에요.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이라는 말은 처음 들으면 다소 비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죠. 태양을 잡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불가능한 것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들의 몸짓, 그 치열한 시도에 의미를 두고 싶었어요. 그건 예술가의 태도이기도 하니까요.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그 에너지 자체가요.
이 제목은 사실 전시에 포함된 실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해요. 무형문화재 최유현 선생님의 젊은 시절 추상 자수 작품인데요, 많은 분들이 최유현 자수장님을 전통 자수의 대가로 기억하시지만, 저는 그 이전, 작가로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색했던 시기를 함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그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선생님께서 “너 취향이 독특하네”라고 하셨죠. 대부분은 전통 자수에만 관심을 갖지만, 저는 그 치열했던 시간의 흔적에 더 끌렸던 것 같아요.
사실 ‘전통’이라는 것도 애초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과 축적의 결과잖아요. 최유현 자수장님도 다양한 시도를 거친 끝에 자신만의 ‘전통’을 만들어가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제목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자수 작가들이 예술가로서 인정받기 위해 감내해온 긴 여정과 노력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고 느꼈어요.
또 자수라는 매체 안에도 보이지 않는 위계들이 존재해요. 예를 들어, 이화여대 출신이나 일본 유학파 작가들이 기술로 작업하는 자수 작가들을 낮게 보는 경향도 있었죠. 자수 자체가 미술계에서는 이미 부차적으로 여겨지는데, 그 안에서도 또다시 위계가 생기는 거예요. 사실 그런 위계는 대부분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구조들이고, 때로는 굉장히 부조리하잖아요. 저는 그런 복잡한 층위들도 함께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시 준비 기간이 연장된 덕도 있었어요. 덕수궁관이 오래된 건물이라 공사 일정이 생기면서 예상보다 전시 준비가 6개월 더 길어졌거든요. 덕분에 제목을 더 오래 고민할 수 있었고, 전시의 맥락과 가장 잘 맞는 선택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필자에게 지금도 여전히 심장이 뛰는 제목으로 남아 있다. 7월 초 전시장을 찾았을 때, 최유현 자수장님의 <팔상도> 작품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던 중 한 전시 해설사가 “각자의 태양을 잡기를 바란다”는 말로 해설을 마무리하는 장면을 우연히 들었고, 그 문장은 이후 작년 남은 반년을 살아내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그 기억은 자수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속에 조용히 반짝인다. 아마도 큰 도전을 앞에 두고 들었던 응원의 말이었기에, 그 순간이 더 또렷하고 따뜻하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Q.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에는 자수, 회화, 자수본 등 170여 점과 아카이브 50여 점이 출품되었죠. 저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너무 많은데, 학예사님께서 특히 마음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도 물론 인상 깊은 작품이지만, 이번 전시에서 특히 집중해서 소개하고 싶었던 작업은 송정인 작가님의 작품이에요. 이분은 초등학교만 졸업하신 분이었고, 이화여대나 해외 유학파처럼 제도권 교육을 받은 ‘엘리트’ 작가는 아니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자수뿐 아니라 추상 자수까지 시도하며 자신의 감각을 확장해 나가신 분이에요.
1960년대 중반, 주로 부산을 중심으로 작업하셨고,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정식으로 소개된 작가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전시가 1990년이었고, 이후에는 미술계와 완전히 거리를 두고 지내셨다고 해요. 제가 처음 찾아뵀을 때는 이 전시에 대해 많이 의심하셨죠.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하는 마음이 드셨을 거예요. 그래도 시간을 두고 소통하면서 점차 마음을 열어주셨고, 결국 소중한 작업들을 꺼내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이분의 작품 자체도 훌륭했지만, 그 삶의 궤적에서도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만약 더 많은 기회와 교육을 받으셨다면,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여러 남성 작가들처럼 널리 알려졌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런 조건 없이도 본인의 감각과 집념으로 작업을 이어오셨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 안에서도 이분의 존재는 특히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자수가 이다지도 현대적일 수가 있나—전시장 한가운데서 그렇게 감탄하며 바라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예사님이 특히 소개하고 싶었다던 송정인 작가의 작품 앞에서, 필자 역시 한참을 머물렀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비제도권 작가였음에도 전통 자수부터 추상 자수까지 끊임없이 감각을 확장해 온 그의 작업은 단지 기술을 넘어, ‘예술’로서 자수가 지닌 힘을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화려하거나 강한 제스처 없이도, 묵묵히 이어진 실의 결에서 삶의 밀도가 전해지는 듯했다. 이번 전시에서 자수가 지닌 현대성과 깊이를 새삼 실감하게 만든, 잊히지 않는 순간이었다.
Q.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소개되었죠. 언급하신 송정인 작가의 경우, 어떻게 발굴하게 되셨나요?
저는 평소에 오래된 전시 도록이나 신문 자료를 자주 들춰보는 편이에요. 그러다 우연히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공예 부문에서 ‘송정인’이라는 이름을 발견했죠. 다른 출품자들은 대부분 이화여대나 공예과 출신인데, 이분은 확연히 다른 이력이었어요. 학력도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고,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분이었죠. 그런데 전통 자수뿐 아니라 추상 자수까지 시도한 점에서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문제는, 이분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어요. 신문에 몇 번 언급된 게 전부였고, 실제 인물과 접촉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래도 어렵게 찾았을 때의 기쁨은 정말 컸어요. 전시를 통해 처음 정식으로 소개되는 작가이기도 하고, 작품도 훌륭하지만 그 삶의 궤적 자체가 깊은 감동을 주는 분이거든요. 제도권 밖에서,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이분의 존재가 전시에 담긴 ‘다양한 자수의 계보’라는 주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에 꼭 소개하고 싶었던 또 다른 작가가 윤봉숙이에요. 이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모두 거친 자수 작가인데, 1938년 <오동나무와 봉황>이라는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기록이 있고, 당시 기사들을 보면 천재로 주목받던 인물이에요. 해방 이후에는 개인전을 열었고, 유명 화가들이 찬조 출품을 할 정도로 미술계에서도 인정을 받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오랫동안 잊혀졌어요.
그런데 정말 흥미로웠던 건, 이분의 자수 작품이 미국이나 영국의 대통령, 왕에게 선물로 전달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 작품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았고, 꼭 찾고 싶었어요. 한동안 행방을 알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전시 일정이 공사로 인해 6개월 연장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소장자를 알게 됐고, 가까스로 전시에 포함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맞춰진 순간이기도 하고, 정말 귀한 만남이었죠.
박혜성 학예사가 전해준 말처럼, 우리는 흔히 자수라고 하면 조용하고 순종적인 여성의 이미지부터 떠올리지만, 실제로 만난 자수 작가들의 삶은 전혀 달랐다. “이분들이 칼을 들었으면 장군이었을 거예요. 그냥 바늘을 들었을 뿐이지, 성격 하나 무난하신 분이 없어요”라는 그의 말처럼, 제도 밖에서도 자신의 감각과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인 이들의 삶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그 치열하고도 단단한 손끝의 역사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호명한 자리이기도 했다.
Q. 곳곳에 자수의 신세계가 펼치다보니 전시장 풍경도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해요. 자수가 조명에 따라 반짝이는 모습을 오래 들여다보느라, 관람객들이 작품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데요.
그래서 전시장 분위기가 꽤 ‘시끄러웠어요’. 보통 미술관에서는 조용히 감상하는 것이 예의처럼 여겨지잖아요.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감탄사나 놀라움이 입 밖으로 절로 튀어나오는 거예요. 저희가 그런 반응을 유도한 건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들이 많았고, 그래서 전시장에 말소리와 숨소리가 가득한, 조금은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졌죠. 저는 그 풍경이 참 좋았어요. 작품이 관람객에게 말을 걸고, 관람객이 그 말에 반응하는 것 같은 장면들이 곳곳에서 펼쳐졌거든요.
그런 반응은 자수가 가진 ‘공력’, 그러니까 손의 힘에서 비롯된 감동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현대미술에서는 추상이나 개념미술처럼 아이디어 중심의 작업이 많고, 손의 노동이나 기술은 점점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도 있잖아요. 심지어 지금은 AI가 작품을 만들어주는 시대인데요, 그럴수록 손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해낸 자수 작품이 주는 울림은 더 크다고 느꼈어요. 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런 ‘공예의 힘’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자수라는 장르 자체가 미술사 안에서 놓인 위치도 굉장히 흥미로워요. 전통적으로 공예는 실용성과 쓰임을 중시하는 영역이고, 자수는 그 안에서도 특히 장식적인 성격이 강한 매체예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수는 실용성이 거의 없는 작업이기도 해요. 자수는 공예 안에서조차 실용성과 거리가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순수미술의 ‘쓸모를 벗어난 아름다움’과도 맞닿아 있죠.
하지만 순수미술 안에서도 자수는 ‘기술 중심’, ‘노동 중심’이라는 이유로 종종 예술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곤 했어요. 그래서 자수는 공예 안에서도, 미술 안에서도 어딘가 애매하고 중간적인 위치에 놓여 있는 장르예요. 저는 그 모호하고 복합적인 위상이 오히려 자수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했고, 이번 전시가 그 지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랐어요.
필자는 이 전시를 세 번 찾았다. 처음에는 마치 피라미드를 처음 본 사람처럼, ‘어떻게 인간이 이런 걸 만들 수 있을까’ 싶은 경이로움에 압도되었고, 세 번째 관람 때는 그걸 만들어낸 존재가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실 하나, 땀 하나, 눈과 손의 집중을 통해 완성된 자수 앞에서 인간의 애정까지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전시를 나설 때마다 마음속에는 “작품 하나를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상상이 따라붙었다. 매일 바라보기만 해도 든든할 것 같은, 그런 감정이었다. 그런 감상을 인터뷰에서 전했을 때, 학예사님은 “그럼 배워보세요” 하고 웃으며 권유했다. 자수라는 매체가 관객에게 그토록 가까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Q. 덕수궁은 전시 공간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곳이지만, 동시에 많은 제약도 있다고 들었어요. 특히 최유현 자수장님의 <팔상도>를 엘리베이터 없이 옮겼다는 비하인드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했어요.
덕수궁은 정말 매력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을 가진 장소예요. 일단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작품을 전부 계단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인데요, 자수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에요. 이전 전시는 조각이었거든요. 팔상도 같은 대형 조각 작품을 2층까지 올릴 때는 저도 옆에서 지켜보면서 조마조마했어요. 계단 하나하나가 진짜 긴장의 연속이었죠.
이번에도 작품을 옮길 때 마찬가지였어요. 물론 실제로 운반은 전문가들이 하시지만, 전시 담당자로서 현장을 지켜보는 건 또 다른 긴장감이 있어요. 특히 자수 작품의 경우 유리 케이스가 함께 들어가야 하는데, 덕수궁은 박물관처럼 상설 전시장이 있는 공간이 아니니까 모든 전시 설비를 새로 설치해야 하거든요. 유리를 옮기는 것도 장난 아니었어요.
Q. 지난해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가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을 수상했죠. 개인적으로도 자수전과 참 잘 어울리는 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감사했고, 무엇보다 너무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이 상은 제가 개인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수를 해오신 모든 분들과 함께 받은 상이라고 느꼈어요. 그동안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작업해오셨던 많은 여성 자수 작가들에게 주어진 것 같아서 더 벅찼습니다.
특히 양성평등문화상이라는 상의 성격 자체가 자수전과 잘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자수는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의 손끝에서 이어져 왔지만, 정작 미술사 안에서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거든요. 그런 작업들을 다시 꺼내어 보이고, 예술로서 인정받게 하는 과정 자체가 이 상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정말 감격스러웠던 게, 이 상을 정유정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영화 <벌새>, <정년이> 같은 작품들과 함께 받았다는 점이에요. 제가 평소에 정말 감명 깊게 본 작품들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문학이나 영화에 비해, 전시는 상대적으로 파급력이나 접근성에서 한계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를 15만 명이 방문해 주셨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유명한 작가도 없고, 이건희 컬렉션도 아니고, 자수라는 매체 하나로만 만든 전시였는데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더 의미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이 상이 자수 연보와 같은, 제 이름이 아니라 전시 자체에 주어진 상이라는 점이 참 좋았어요. 누가 했든지 간에 한 번쯤은 반드시 나왔어야 할 전시였다고 생각하고요. 사실은… 이런 전시를 기획하려면 좀 무식해야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힘들 걸 다 계산하고 시작했으면, 아마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Q. 15만 명이 다녀간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였죠. 관람객들의 반응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인상적인 피드백이 있었을까요?
그럼요, 정말 많았어요. 무엇보다도 기자님처럼 진심으로 좋아해 주신 분들이 계셨다는 게 제일 감사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젊은 층 관람객들이 찾아와 주셨다는 점이에요. 사실 제 윗세대 분들은 학교에서 자수를 배웠던 경험이 있어서, 일정한 노스텔지어를 갖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오실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디지털과 AI에 익숙한 세대잖아요. 웬만한 자극엔 잘 놀라지도 않는 세대인데, 그들이 자수를 ‘신기하게’, ‘아름답게’ 봐주고, 전시를 길게 감상해주었다는 게 저는 정말 뜻깊었어요. 단순히 ‘기억’이나 ‘과거의 기술’로서 자수를 소비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가치나 태도, 실천을 읽어내려 했다는 점에서요. 그런 태도가 앞으로의 예술 감상에서도, 또 삶의 감각 안에서도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역시 20대 딸이 있는데요, 그런 생각도 들어요. 매일 보던 것, 남들이 좋아하는 것 말고, ‘태양을 잡으려 했던 여성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는 것. 그 치열한 몸짓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고,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늘 있었죠.
당시 자수를 하셨던 분들 중에는 억울함을 안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우리는 그렇게 노력했지만 예술가로 불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유족 분들께도 직접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끝까지 작업을 이어오셨어요.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또 자수는 무형문화재로서도 특이한 위치에 있어요. 무형문화재 분야 자체가 계승과 보존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데, 자수는 다른 한편으로는 생계와 맞닿아 있었어요. 작업을 해서 팔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무형문화재와는 또 다른 결을 갖고 있었죠. 그것도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층위였어요.
그리고 전시 후반부에는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자수를 해석한 사례도 소개하고 싶어서, 북한에서 장인이 만든 자수를 활용한 한경화 작가의 작업도 함께 선보였어요. 현대미술에서는 작가가 개념을 제시하고 장인이 제작을 맡는 경우가 있는데, 전통 자수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자수를 놓는 사람이 달랐던 전통이 있어요. 그런 흐름이 묘하게 이어진다는 점도 흥미롭더라고요.
이번에 북한 자수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지만, 그 한 점의 작품을 통해서도 북한 자수의 흐름, 일본에서 기술을 익힌 장인들의 전후 맥락 같은 것들이 엿보였어요. 이건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이고,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죠.
그래서 이번 전시가 단지 하나의 ‘기획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수와 근현대 미술을 둘러싼 더 깊은 연구와 전시, 기록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이번 전시를 보고 논문을 쓰고 싶다는 분들도 계셨고요. 연보처럼, 이건 어디까지나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이번 전시가 담은 메시지는 분명 많은 이들의 마음에 닿았을 것이다. ‘태양을 잡으려 했던 여성들’의 치열한 손끝의 기록들, 이름 없이 사라졌지만 묵묵히 작업을 이어온 수많은 자수 작가들의 존재를 처음으로 조명한 이 전시는,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예술과 여성, 노동과 손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물꼬를 트는 일이었다.
그래서 ‘양성평등문화상’ 수상은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는 단순한 영예가 아니라, 오랜 시간 예술로 불리지 못했던 이들의 작업과 삶에 건네는 첫 번째 공식적인 응답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기록, 그리고 기억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번 전시는 그 흐름을 시작하게 한 첫 단추, 물길을 연 소중한 전환점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Q. 이번 전시는 단순한 과거의 재조명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이기에 가능했던 전시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자수라는 장르, 그리고 공예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이번 전시와 맞닿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 아니었으면 이 전시는 열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10년 전만 해도 자수나 공예는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공예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어요. 특히 젊은 세대들이 공예를 감각적이고 의미 있는 매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요.
전 세계적인 흐름도 있어요.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한 주요 국제 전시에서도 섬유 예술, 여성 공예, 위빙 문화 같은 것들이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잖아요. 여성 작가들의 손작업 기반 예술이 다시 주목받는 흐름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이번 전시는 그런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놓였다고 생각해요. 그런 배경 덕분에 이번 전시가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이런 전시는 개인이나 사립 갤러리 차원에서는 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에요. 수익을 내는 전시가 아니잖아요. 연구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디테일을 끝까지 챙기려면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국립미술관이기에 가능한 전시였다고 생각해요. 미술사적 책임을 갖고, 시장 논리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거죠.
덕수궁이라는 장소도 그런 의미에서 중요했어요. 공간적으로 제약이 많긴 했지만, 근대라는 시간성과 자수가 갖고 있는 정서가 정말 잘 어울리는 장소였고요. 전시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분들이 함께 고생하셨고, 그런 여러 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전시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의미 있었고, 지금 이 시점에서 열렸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들이었다고 느껴요.
Q.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이번 전시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그건 자수라는 매체 자체가 지닌 형식적인 다양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전시에 담긴 작가의 삶, 배경, 방식, 시기, 계보의 층위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채로운지를 포함하는 말이에요.
이번 전시에는 제도권 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 작가부터,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작업을 이어간 작가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의 작품이 함께 놓였어요. 전통 자수에서부터 추상 자수, 현대미술적 해석을 담은 자수까지, 자수라는 범주 안에 존재하는 미감과 관점의 폭도 굉장히 넓었죠.
뿐만 아니라 자수 안에 존재하는 위계와 경계, 그리고 그것을 넘나드는 작가들의 움직임도 중요했어요. 자수는 공예 안에서도 장식적이고 실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주변화되었고, 순수미술 안에서는 또 기술 중심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기도 했죠. 자수는 늘 경계에 서 있는 장르였고,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애매한 경계’들 안에서 피어난 다양한 이야기에 주목한 시도였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단순한 자수의 역사나 계보가 아니라, 그 계보 바깥에 놓여 있던 목소리들,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흐름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시선으로 다시 발견된 감각들이었어요. 결국 자수를 통해 다양한 존재와 태도, 표현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해요.
Q. 만약 다음 자수전을 기획하신다면, 어떤 전시를 구상하고 계신가요? 혹은 아직 다루지 못한 주제가 있으셨다면요.
자수전을 관심있게 봐준 몇몇 아시아 지역의 큐레이터들과 함께 비공식적인 섬유예술 스터디 그룹을 시작했어요. 자수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넓은 개념의 ‘섬유 예술’을 아시아라는 지역성과 연결해 살펴보는 공부예요. 한국 자수를 깊이 들여다본 만큼, 이제는 그 시야를 넓혀 비교의 시각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 전시를 기획하게 된다면, 자수를 아시아 섬유예술의 한 갈래로 놓고,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섬유 표현과 실천이 어떻게 교차하거나 달라지는지를 조명해보고 싶어요. 단순히 전통적인 섬유 기술만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사회적 맥락이 바닥에 깊게 깔려 있으면서도 관람객은 몰라도 재미있고, 알면 더 흥미로운 전시요. 겉으로는 쉽고 즐겁게 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계보와 층위가 촘촘하게 스며 있는 전시. 자수전이 그랬듯, 다음 전시에서도 그런 흐름을 이어가고 싶어요.
정말 다양하고 깊은 함의들이 총망라된 이번 전시는, 기획자가 이런저런 숨은 고려를 했다고 굳이 알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오히려 더 인상 깊었다. 수많은 층위와 논의, 역사적 맥락과 감각의 실천들이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치밀한 설계와 세심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단단한 직물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엔 치열한 직조가 숨어 있다. 이번 전시가 그랬듯, 다음 전시 역시 ‘알아도 좋고, 몰라도 충분한’ 두 층의 결을 지닌 채로, 한 번쯤은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할 논의들을 은근히, 그러나 분명하게 건네줄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기획자가 감당해온 사유의 깊이와 균형 감각에 대해, 지금 이 지점에서 한 번쯤은 주목해보고 싶었다.
Q. 4월에 새로운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전시인지 살짝 스포해 주실 수 있을까요?
4월에 《초현실주의와 한국 근대미술》 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간단한 소개는 이미 홈페이지에도 올라가 있지만, 이번 전시 역시 작년 자수전에 이어 ‘근대 미술가의 재발견 2’라는 큰 흐름 속에서 기획된 연작 개념의 전시입니다. 작년에 자수를 통해 근대의 이면을 들여다봤다면, 이번에는 초현실주의라는 계보로 국내 근대미술을 다시 바라보는 시도라고 할 수 있어요.
흔히 “한국에는 초현실주의가 없었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저는 정말 그랬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만약 없었다면, 왜 없었을까? 또 우리가 말하는 ‘초현실주의’란 과연 무엇일까? 이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시작점이었어요.
대부분 초현실주의 하면 서양,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초현실주의는 20세기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 흐름이에요. 그만큼 단일한 양식이나 정답이 있는 미술 사조라기보다, 각 시대와 지역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했는지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지닌 예술적 태도라고 볼 수 있어요.
이번 전시도 그런 관점에서 구성하고 있습니다. 한국 근대기의 초현실주의적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일본에서 유학한 작가들이 어떤 예술 환경 속에 있었는지, 일본 안에서는 또 어떤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는지, 더 나아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가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까지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하나의 미술 흐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단일국가 중심이 아니라 비교와 교차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전시는 초현실주의라는 개념을 새롭게 질문하면서, 당시 한국 미술 안에서 어떤 상상력과 실험들이 펼쳐졌는지를 탐색하는 전시예요. 그간 고정된 시선으로 잘 보이지 않았던 표현들을 다시 조명하고, 미술사를 다른 방향에서 읽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이름 없이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시간과 손끝의 감각, 삶의 궤적을 새롭게 호명한 자리였다. ‘전통’이라는 단어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치열한 실험과 창조의 순간들, 공예와 미술, 노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어져 온 자수의 계보 없는 마법이 이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현재형의 언어로 발화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전시는 질문에서 출발해 질문으로 닿는다. ‘한국 자수는 변하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높고 낮음은 누가 정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정답 대신 시선을 열고, 층위를 드러내며, 다음을 위한 물꼬를 트는 일.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바로 그 일에 성공한 전시였다.
1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자수의 결처럼 이 전시는 여전히 천천히, 깊게, 오래 남는다. 한 땀 한 땀 꿰매듯 이어진 이야기들이 언젠가 또 다른 손에 의해 계속 이어지기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수의 연보가 다시 꺼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각자의 태양을 열망하듯, 그렇게 다시—실을 꿰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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