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과 현대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독특한 건축물 안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두 여성 화가, 천경자와 김인순의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천경자 작가는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양식과 행보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으며, 김인순 작가는 한국 여성의 사회적 현실을 예술로 표현해 왔습니다. 이 두 작가의 전시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니,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전시기간 : 2024.08.06~2025.08.05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 천경자컬렉션전시실
전시부문 : 회화
서울시립미술관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 천경자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상설전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천경자가 생전에 직접 선별하여 기증한 작품들로 구성된 컬렉션을 중심으로, 작가의 인생과 예술적 여정을 깊이 탐구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천경자 컬렉션은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60여 년간 제작된 작품 중 작가 스스로가 선별한 93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단순한 작품 모음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물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천경자의 대표작뿐만 아니라 비교적 덜 알려졌던 기행(紀行) 회화에 주목한다. 기행 회화는 천경자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기록한 풍물과 인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로, 그가 ‘여행풍물화’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했음을 보여준다.
여행을 통해 천경자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각 지역의 문화를 재해석하고, 이를 화폭에 담아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풍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여행지의 독특한 정서와 자신의 내면세계를 융합한 작품을 창작했다. 이러한 기행 회화는 천경자가 지닌 창조적 에너지와 독창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중요한 자료다.
제목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는 천경자가 1986년 발표한 여행 수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제목은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천경자는 자신의 예술적 탐구와 삶의 철학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펼쳤다. 그는 단순히 물리적 여행뿐 아니라 심리적,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바람’은 고정된 경계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천경자의 성격을 상징하며, 이는 그의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천경자의 작품 세계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의 정신적 여정을 반영한다. 이러한 그의 정신과 삶의 철학을 조명하며, 관람객이 작품과 작가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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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김인순 컬렉션 ≪일어서는 삶≫
전시기간 : 2024.08.29~2025.02.23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 가나아트컬렉션전시실
전시부문 : 회화
작가 김인순(金仁順, 1941– )은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예술은 여성의 사회적 현실과 그 안에 담긴 고유한 서사를 탐구하며, 이를 통해 여성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조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전시 《일어서는 삶》은 김인순의 예술 세계를 깊이 탐구하며, 여성주의 미술의 실천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김인순은 자신의 예술적 철학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과 사회적 현실을 치열하게 담아낸 작가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미학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현실주의적 태도로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특히 여성의 고통, 희생,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 에너지를 통해 인간의 평등과 조화를 추구했다. 그는 여성의 의지와 생명력이 인류의 밝은 미래를 이끌 핵심 요소라고 믿었으며, 이를 작품을 통해 강렬히 표현해 왔다.
이번《일어서는 삶》은 ‘여성이란 이름으로’, ‘움켜쥐는 아름다움’, 그리고 ‘생명, 빛의 여정으로’라는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각 섹션은 김인순이 탐구한 여성의 다양한 모습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첫 번째 섹션은 현실과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희생된 여성들의 서사를 다룬다. 김인순은 억압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현하며,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다. 작품 속 여성들은 종종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 있지만, 작가는 그들의 고통을 단순한 희생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성들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강인함과 존엄성을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이 섹션에서는 작가가 여성주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역사적 사건들과 일상 속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역사와 현실 속에서 잊혀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 섹션은 역경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결실을 맺은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로 구성된다. 김인순은 여성의 삶을 자연의 근원적 생명력에 비유하며, 척박한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는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탐구했다.
이 섹션의 작품은 여성들의 강인한 모습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 깃든 여성성을 함께 담아낸다. 척박한 땅에서 피어나는 꽃과 열매, 그리고 생명 에너지가 넘치는 자연의 이미지는 여성의 본질적인 창조적 에너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관람객은 여성의 삶과 자연의 생명력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연결성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섹션은 인류의 축복인 잉태와 출산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로 구성된다. 김인순은 여성의 몸과 생명력을 우주적 창조 행위로 바라보며, 이를 민족미술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이 섹션의 작품들은 여성의 생명 창조적 가치를 찬미하며, 인류의 밝은 미래를 이끌어가는 여성의 존재를 예술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이 섹션에서는 김인순이 전통적 한국미술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통해 민족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성의 우주적 가치를 담아낸 작품들은 단순한 잉태의 기쁨을 넘어,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창조성을 경외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