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 과거에서 온 미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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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그의 이름을 세 번 반복하는 이 전시는 마치 조용히 그의 존재를 되새기고 추모하는 듯하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오는 3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백남준 사후 개최된 회고전 중 가장 큰 규모로, 그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

비디오 아트의 개척자로 불리는 백남준은 기술과 예술,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었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흐름을 바꾼 그의 작품은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을 단순히 ‘비디오 아트’로만 한정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그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사를 만나, 백남준이라는 거대한 예술적 유산을 오늘의 시선으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리고 이번 전시가 어떻게 백남준을 새롭게 조명하는지 함께 탐색해보고자 한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전시 제목이 특히 눈길을 끄는데요. 백남준 작가의 이름을 나직하게 부르는 듯한 이 제목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저희도 전시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두세 달 동안 관장님과 연구사분들과 함께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고,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처음에는 백남준 작가의 어록을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죠. 하지만 전시 구성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명확해졌어요. 결국, 백남준의 다양한 모습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그의 이름을 세 번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목이 확정되었죠.

<TV 첼로>


백남준 작가의 전시 작품이 재밌는 점이 ‘매일 고장이 나고, 또 매일 수리한다’고요.

오늘 아침에도 작품을 수리하고 왔어요. 거의 일상적인 일이에요. 백남준 작가의 작품에는 1980년대 브라운관 TV가 많이 사용되는데, 지금의 스마트 TV 세대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장비들이죠. 그런데도 이런 구형 장비를 그대로 유지하는 이유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에요. 학계에서는 작품이 사용한 원래의 기자재 자체가 예술의 중요한 일부라는 관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만약 현대적인 LED 화면으로 바꾼다면, 더 가볍고 관리도 쉬워지겠지만, 그것은 곧 작품의 정체성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오래된 장비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아요. 특히 내부 부품이 단종된 지 오래되어 필요한 부품을 구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에요. 현재 을지로에 정우철 사장님이라는 분이 계신데, 이분은 과거 백남준 작가가 직접 작품 수리를 맡겼던 기술자예요. 지금도 작품을 유지·보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또 다른 주요 테크니션으로는 이정성 선생님이 계신데, 두 분 모두 연세가 있으셔서 앞으로 작품 유지·보수의 명맥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많아요.

전시품을 수리하는 김가현 학예사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언급하고 싶은 작품으로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을 꼽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이 이렇게 거대한 작품인데도, 실제로는 USB 하나와 매뉴얼 세 장만이 도착해요. 결국, 저희는 그 자료를 보고 직접 설치해야 하는데, 매뉴얼에는 단순히 “TV 23대, 나무 5m 이상” 같은 기본적인 정보만 적혀 있어요.

나머지는 우리의 상상력, 당시 작품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정성 선생님이 기억하는 백남준 선생님의 작업 방식을 바탕으로 구성해야 했어요. 그래서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는 다른 미술관에서 설치될 때마다 100번 설치하면 100가지 다른 형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에서는 매뉴얼에 따라 5m 높이의 나무를 모두 확보한 후 설치했고, 덕분에 이전보다 더 숲에 가까운 형태로 구현되지 않았나 싶어요.

<걸리버>
1부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 : 1960년대 초반 ~1980년대 중반”


대규모 전시인 만큼 공간 구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공간 디자인이나 관람 동선은 어떻게 고려하셨나요?

디자인적 요소를 활용해 공간이 변화할 때마다 관람객들이 ‘이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도록 유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플럭서스 운동이나 초기 신체 미술, 실험 예술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다소 어렵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저희도 공부할 때 쉽지 않았고, 일반 시민들이 보면 ‘이게 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그 해결책 중 하나로, 빨간색 방과 파란색 방처럼 색을 활용해 공간을 구분했어요. ‘왜 이 공간이 빨간색일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을 더 오래 감상하도록 했죠.

또한, 요즘 전시에서는 작품 설명을 최소화하거나 캡션 없이 구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플럭서스와 1960년대 실험 예술은 설명이 없으면 관람객들이 단 1초 만에 지나칠 수도 있는 작품들이에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텍스트와 설명을 충분히 제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그리고 공간 설계에서도 강제 동선을 적용했어요. 즉, 한 공간을 지나야만 다음 전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해,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

1부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 : 1960년대 초반 ~1980년대 중반”


1부 플럭서스를 언급하셨는데, 백남준 작가가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을 연주하다가 청중석에 있던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른 퍼포먼스를 기리는 의미로, 백남준 작가가 타계했을 때 문상객들이 모두 잘린 넥타이를 매고 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인상 깊었어요.

플럭서스나 실험 예술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조지 마치우나스 밑에 있던 로봇 아티스트들까지, 이런 예술가들은 단순히 급진적이거나 파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낭만적인 면이 있어요. 존 케이지나 무세 포이스 같은 인물들도 그렇고요.

이런 실험 예술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고, 일탈적인 행위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도, 그 자체로 굉장히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백남준 선생님이 타계하셨을 때, 문상객들이 각자의 넥타이를 잘라 관에 넣었다는 사실이 정말 낭만적으로 느껴졌어요.

어떻게 보면, 1960년대에 실험 예술을 했던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강했던 세대였죠. 그들이 남긴 퍼포먼스와 예술적 행위들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 같아요.

<TV부처>

기억에 남은 관람객의 반응 중 하나가 백남준 작가를 여전히 현존하는 작가로 여긴다는 점이 신선했다고요.

‘백남준이 누구야?’라고 묻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해요. 저는 백남준 작가가 살아 있을 때 TV에도 자주 나오고, 항상 화제가 되던 작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 중에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더 흥미로운 건, 많은 학생들이 백남준을 현대의 젊은 작가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이 TV 작품 본 적 있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어디서 봤어?’라고 물으면, 마치 살아 있는 작가의 신작을 본 것처럼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대화가 시작되죠. ‘아니야, 백남준 선생님은 1932년생이셔’라고 설명해 주면, 학생들이 놀라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그러니까 사실 굉장히 오래된 TV들이고, 대부분 60~70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학생들은 그것을 단순히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퓨처리즘의 빈티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진짜 6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이야”라고 설명해 주면, 그제야 놀라며 작품을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조지 마키우나스>를 바라보는 김가현 학예사

백남준 작가는 마치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미래 예언자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는 단순히 미래를 예측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말하고 꿈꾼 대로 세상이 변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보면, 정말 미래를 살짝 다녀온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저희도 그런 부분을 많이 생각해 봤어요. 백남준 작가뿐만 아니라, 역사 속의 많은 연구자나 학자들 중에는 미래에 대한 직관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이 어떤 현상을 보고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예측하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죠. 과학자나 기술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지만, 예술가가 미래를 예견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어요.

그렇다면, 예술가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떤 느낌일까? 저는 분명 예술가들마다 미래를 해석하는 성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백남준은 긍정적인 시선으로 미래를 바라봤기 때문에, 그의 작품 또한 밝고 유쾌한 에너지를 담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는 단순히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본 미래를 작품으로 실현하는 데 끊임없이 노력했던 예술가였어요.

돈이 있든 없든, 현실적인 제약이 있든 없든, 그는 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움직였죠. 대표적인 예가 1984년 KBS와 함께했던 전 세계 위성 예술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에요. 한날 한시에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작품을 본다는 개념을 실현한 것이죠. 지금의 인터넷 환경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그가 그린 미래는 결국 현실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마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로봇 K-456>

마지막으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전시 관람객에게 어떤 메시지가 닿길 바라시나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1년 동안 백남준의 수많은 어록을 접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우리의 미래는 순전히 행복할 거야.’ 라는 문장이었어요. ‘순전하다’와 ‘행복하다’라는 단어 자체는 굉장히 단순한데, 두 개가 함께 붙이니 정말 따뜻하고 희망적인 울림이 있더라고요. 이 전시를 보시는 분들도 그런 감정을 느끼며 작품을 감상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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